조용한 한 그릇에 담긴 광복의 기억 – 안유성 셰프의 '곤드레 들밥'
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미식 축제, ‘코리아 메모리얼 푸드페스타 2025’. 그 화려한 요리들 사이에서, 조용히 그러나 묵직하게 다가온 음식이 하나 있었다. 바로 안유성 셰프가 선보인 ‘곤드레 들밥’이다.
눈길을 사로잡는 장식도 없고, 대단한 기교가 들어간 플레이팅도 아니다. 그저 잘 지어진 곤드레밥 위에 손질한 산채와 장이 곁들여졌을 뿐. 하지만 그 단출함이 오히려 강하게 남는다.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앉아 조용히 밥을 비비게 만드는 힘. 그것이 이 한 그릇의 본질이었다.
🌱 뿌리 깊은 음식, 기억을 지키는 방식
곤드레는 산에서 자라는 풀이다. 거칠고 척박한 땅에서도 끈질기게 자라나며, 오래 전부터 강원도 산골의 식탁을 지켜온 식물이다. 안유성 셰프는 그 곤드레를 선택함으로써, 광복 이후의 삶을 지탱해온 소박한 힘을 이야기하고자 했다.
그는 말한다. “누군가는 태극기를 들고 싸웠고, 누군가는 숨어서 밥을 지어야 했습니다. 저는 그 밥 짓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.” 그래서 이 곤드레밥에는 기념일의 흥겨움보다는 일상을 지켜낸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다.
👨🍳 안유성 셰프, 말보다 음식을 믿는 사람
안유성 셰프는 음식에 말을 담는다.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전통과 현대를 잇는 요리 연구에 집중해왔고, 특히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의 밥상을 복원하고 소개하는 데 애써왔다. 그의 요리는 화려하지 않지만, 그만큼 진심이 선명하다. 이번 곤드레 들밥에서도 그가 택한 재료는 하나같이 ‘살아남기 위해 먹었던 것들’이었다. 그리고 그 이야기는 별다른 설명 없이도 고스란히 전해졌다.
접시에 담긴 고추장, 살짝 익힌 더덕, 얇게 썬 묵나물은 단지 반찬이 아니라 그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의 기록처럼 느껴졌다.
🍚 광복을 기억하는 방식, 조용한 밥상
우리는 종종 ‘기억’이라고 하면 큰 사건이나 상징을 떠올린다. 하지만 진짜 기억은 아주 작은 것, 매일 반복되던 밥 한 끼에 깃들어 있기도 하다. 안유성 셰프의 곤드레 들밥은 그런 의미에서 특별했다.
광복은 거대한 서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. 아이를 키우고, 땀 흘려 밭을 갈고, 다시 밥을 짓던 사람들의 삶 속에 광복은 있었다. 그리고 바로 그 이야기를, 이 밥 한 그릇이 조용히 들려준다.
이것은 그냥 곤드레밥이 아니다. 묵묵히 시대를 버틴 이들을 위한 헌사, 그리고 우리가 여전히 지켜야 할 밥상의 의미다.